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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1   현대사회 지식인과 대중에 관한 소론
현대사회 지식인과 대중에 관한 소론

신이 사고체계의 중심이었던 시대를 전근대라고 한다면 당대의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신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던 성직자였을 것이다. 그 당시 지식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추측컨대 당대의 지식은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민중은 상류층이 습득할만한 지식을 알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봉건적 지배구조 아래에서 민중은 그저 수동적인 개체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중이 지식을 접하기도 쉽지 않았다. 생업에 몰두하는 일 자체도 버거웠을 테지만 책을 구하기나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지식의 계급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신분제의 폐쇄성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거꾸로 계층구조를 유지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지식인과 민중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데카르트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계몽주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부터라고 본다. 계몽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주체는 인간 스스로이며 또한 그 근본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성이다. 계몽enlightenment이라는 말은 본래 어두운 방 안에 전구light를 켜듯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깨운다는 의미이다. 전근대적, 넓게는 구시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민중의 이성을 깨우려는 지식인들을 계몽적 지식인이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헌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계몽이라는 말은 의미가 확대되어 교육과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계몽이라는 단어를 정의한다면 ‘지식수준이 낮거나 전통적인 인습에 젖어 있는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계몽적 지식인이라는 말의 의미도 ‘이성을 깨우는 자’에서 ‘가르쳐서 깨우치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계몽적 지식인에 대한 성토가 등장했다. 계몽적 지식인과 대중의 관계를 살펴보면 지식인은 가르치는 주체이고 지식인층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관념적이고 고고한 권위적 지식인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과 인간의 변화,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소통이 없는 일방적인 관계가 한계를 드러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들과 대조되는 새로운 지식인상-이를테면 실천적 지식인과 같은-이 요구되었다. 헌데 새로운 지식인상을 논하기 전에 과연 계몽적 지식인이 비판의 대상인지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지식인은 무엇이며 지식인의 계몽성은 또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지식노동에 종사하는 사회계층을 일컫는다. 지식노동을 다른 말로 지적 콘텐츠의 생산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지식이라는 말이 너무나 광범위하다. 지식인 계급과 지식인이 아닌 계급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 노동계급 상에서 지식인을 위치시킬 수 있는 곳은 두 가지다. 육체노동계급, 즉 블루칼라Blue Collar와 구별되는 화이트칼라White Collar를 통틀어 지식노동계급이라 볼 수도 있고, 화이트칼라의 상위개념인 골든칼라Golden Collar로 따로 분류할 수도 있다. 허나 사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경계 긋기가 어렵다. 육체노동 종사자 역시 해당 분야에 관련된 그만의 고유한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금 융통성을 두어 노동력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구분한다 할지라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역할로 나눠보면 조금 더 명확한 규정이 가능하다. 여타의 집합과 구별되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지식으로 민중문화를 고양시켜야 하고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지식인은 지식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지식인을 ‘지적 콘텐츠의 생산을 포함한 자신의 지식활동이 사회와 각 분야에 폭넓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집단을 대중이라 부르기로 하자.

 

지식인의 지식활동엔 무엇이 있을까. 쉽게 떠오르는 것들은 집필, 연구, 강의 세 가지다. 이 중에서 대중과 지식인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맺는 것은 집필과 강의이다. 책을 저술하는 행위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식전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전달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형식을 논한다면 집필이나 강의처럼 글이나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언어’와 그림이나 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시각적 매개체’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다. 따라서 지식의 전달이란 결국 의사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조금 극단적인 예지만, 어느 날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A와 필자가 중도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C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모습이 그려질까. 그것은 마치 과외를 받고 있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의 모습일 것이다. 필자는 C언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은 ‘토론’이고 ‘대화’이며 ‘의사소통’인 동시에 상호간의 ‘지식의 전달’이다. C언어에 관한 한 A는 지식인이고 필자는 대중이다. 필자가 A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보라고는 고작해야 필자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뿐일 것이다. 요컨대 지식인과 대중의 소통은 그 자체로 일방적이다. 이것을 교육이라고 보아도 될까. 다시, 이것을 앞서 이야기한 대로 폭넓은 의미에서 ‘계몽’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소통은 그 자체로 계몽적 성격을 갖는다. 지식인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중과 소통해야 하고 그것은 계몽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니 지식인이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계몽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즉, 계몽적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중복적이다. 그래서 계몽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올바르지 않다. 문제제기를 하려면 ‘계몽적 지식인’보다는 차라리 ‘지식인의 계몽성’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물론 지식인의 계몽성을 문제 삼는 것은 지식인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현대에 와서는 지식인과 대중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의식이 성장하여 자유, 평등에 대한 가치관이 발달하고 봉건적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과거 상류층에게만 허락되었던 지식에의 접근이 모든 계층, 계급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인쇄술의 보급은 책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교육권의 확대, 여가시간의 증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일반대중 역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지식이 더 이상 신분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지식분야는 더욱 다양해졌고 세분화되었고 고도화되었다.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계급 안에 지식을 가두어 사회적 권위로 이용하기에는 지식의 카테고리가 너무나 광대해졌다. 사회적 계급으로서의 지식인과 대중의 경계는 사라진 것이다. 다만 소통하는 주체로서의 지식인과 대중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by 유민석 | 2010/07/31 00:04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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