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명품
2010/10/02   프라다와 빠다 사이 [1]
프라다와 빠다 사이

악마는 빠다(PPADA)를 입을 수도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캡처 이미지 중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같은 디자인의 프라다 토트백을 하나는 로고가 그대로 박혀있는 상태로 올리고 하나는 로고를 제거한 뒤 올려서 각각의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을 캡처해놓은 사진이었다. 반응은 상이했다. 로고가 있는 사진에는 ‘너무 이뻐요.’, ‘이 가방 얼마죠?’, ‘모델명이 뭐에요?’ 등 갖갖이 상찬이 쏟아진 반면, 프라다를 제거한 사진에는 ‘ㄴㄴ’, ‘엄마 계모임 갈 때 들고 가는 것 같다.’, ‘사지 마시긔.’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캡처 자체가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기색이 역력하다. 해당 이미지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명품녀가 어쩌고 저쩌고, 된장녀가 이러쿵 저러쿵. 근데 사실 디자인에 있어서 로고의 존재 여부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작은 엠블럼 하나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가져온다. 하지만 위와 같은 극명하게 다른 반응이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가방에 붙어있는 로고가 P R A D A가 아닌 다른 활자였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면 답은 쉽다. 아니면 로고를 제거하는 대신 다른 활자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P P A D A 같은.

  9월20일자 부산일보에 프라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한 남성이 부인의 선물로 프라다 매장에서 가방을 구입했는데 로고가 잘못 찍혀있더라는 것이다. 프라다 측은 로고의 철자 하나 하나를 손으로 붙이다보니 이런 실수가 나왔다고 변명했다. 짝퉁도 그런 실수는 안 한다는데, 빠다(PPADA)제품을 169만원 주고 샀다는 생각을 해보면 사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이 기사를 보더니 ‘이것이 바로 세계화와 노동유연화의 결과’라면서 ‘진품과 짝퉁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했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명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고집스럽게 ‘진짜’ 명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것은 극소수의 상류층에 의해서만 소비되기에 이택광의 글이 주는 시사점과는 큰 관련이 없다. 그의 짤막한 글은 대중화된 명품을 바라보는 문제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그것도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고객의 범위를 중산층으로까지 넓힌 명품(이택광의 문제의식이 조명하는)은 그것의 장인정신 때문에 소비되지 않았다. 명품을 구입하는 이유가 ‘품질이 좋아 오래 쓸 수 있어서’라면 100만 원짜리 가방이 만 원짜리 가방 100개만큼의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명품과 사치품의 경계가 흐릿해진 시점부터 명품의 소비는 그 물건의 질quality과의 관련성을 잃었다. 대신 명품 그 자체가 가치value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나 노동의 유연화하고는 관계가 없다.

 

 

Louis Vuitton in china

  한 인터넷 중고명품거래 사이트 게시판에 루이비통 공장이 중국에도 있다는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루이비통 매장에서 제품을 사고 집에 와 확인해 보니 라벨에 made in china라고 적혀있더란다. 놀란 글쓴이는 백화점에 전화를 걸었고 직원으로부터 “그 라인은 중국에서 생산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댓글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글이 하나 둘 올라오더니 이윽고 “당신이 잘못 알고 있다. 루이비통 매장은 중국에 없다.”, “어느 백화점, 어느 지점이냐, 확인해 봐야겠다.”, “허위 사실 유포하지 말라.” 등 회의적, 부정적인 반응이 뒤를 이었다. 급기야 글쓴이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지인으로부터 건너 들은 정보’라는 말과 함께 사과함으로써 작은 논란은 마무리되었다.

  이들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명품은 중국에서 만들어지면 안 된다. 그것은 명품이 아니다. 나의 루이비통은 그럴 리 없다능. 이런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루이비통이 OEM업체로 중국 업체를 선정한 것은 한참 옛날의 일이다. 중국에 루이비통의 직영 공장은 없지만 중국 업체가 만드는 제품에 루이비통 이름을 달고 나온다는 뜻이다. 그것들은 정품으로 매장에서 판매된다. (OEM은 무조건 이미테이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S급 이미테이션 제품은 대개 OEM업체가 생산한 물품 중 출하하지 못한 제품이 다른 경로로 유통된 것이다.)

  루이비통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제품의 질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업체에 자신들의 제품 생산을 맡겼을 리는 없다. 중국의 의류 제조업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인 네티즌들은 그런 사실에 관계없이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명품의 존재를 부인해 버린다. 그들에게 있어 명품이란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세계의 패션중심지에서 생산되는 예쁘고 고급스러운 물건이다. 그들은 감히 중국 따위(?)가 루이비통의 핸드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백화점 매장의 직원으로부터 나온 정보라 할지라도 믿을 수 없다. 이쯤 되면 명품에 신성을 부여해도 될 법하다.

 

 

프라다의 포코노 백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다시 프라다로 돌아오자. 정재승과 진중권이 공동으로 집필한 『크로스』(정재승 외. 2009. 웅진지식하우스)에도 프라다 이야기가 나온다. 진중권의 글에 따르면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우 프라다는 ‘일하는 중산층 여성’을 위하여 가죽 제품 대신 실용성을 가미한 포코노, 일명 프라다천이라고 알려진 나일론을 이용하여 가방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프라다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한다. 미우치우 프라다의 ‘실용성’에 기반을 둔 것인지 프라다는 급기야 비닐로 된 가방을 출시했다고 한다. 공동 저자인 정재승은 이를 두고 ‘단위 면적당 가장 비싸게 나일론과 비닐을 파는 사기꾼들’이라며 프라다의 경영전략에 감탄한다(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감탄이란다. 나도 감탄스럽다).

  나일론과 비닐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명품은 명품이다. 몇 십 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이다. 그래도 비닐 가방을 그 돈 주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건 너무 멍청해 보이는 짓이니까. 반면 나일론 가방은 2000년대 초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야말로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실용적인’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것이 제품의 질과 상관이 있을까? 포코노는 기본적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합성섬유다. 질기기도 하거니와 나름의 미적 가치를 지닌다 할지라도 그것에 장인정신 같은 것은 없다.

 

 

  결국 명품에 대한 욕구는 제품의 질quality과는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명품은 소비자에게 제품의 질적 효용성을 제공하는 대신 화려하고 멋있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즉, 명품의 지위는 실물에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성된 ‘명품이라는 추상적 가치value’에서 비롯된다. 루이비통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세계화나 노동의 유연화로 인한 품질quality의 하락이 아니라 명품이 지닌 가치value의 하락이다. 때문에 P R A D A와 똑같은 질quality을 가진 P P A D A에 분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용적이든 어떻든 상관없다. 프라다 포코노 백의 이미테이션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수많은 짝퉁들은 ‘실용성’을 위해 소비되지 않았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P R A D A와 P P A D A 사이의 긴장에서 알 수 있듯이 예쁜 디자인에 대한 욕구와 명품에 대한 욕구가 결합할 수 있는 지점은 상당히 ‘미니멀’하다.

  대중화된 명품의 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명품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누군가(누구더라?)가 말했듯이 현대사회의 소비는 기호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니 명품에 대한 욕구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중권 말마따나 악마조차 프라다를 입는다는데 사람이라고 별 수 있나. 그나저나 프라다 매장에서 파는 빠다(PPADA)는 진품일까 짝퉁일까?

 

+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 대개 명품녀, 된장녀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끌어오는데, 그것이 현대의 소비 행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논의되는 것은 그저 감정배설, 대상에 대한 비하 이상의 의미가 없다. 대개 몸매 좋은 바텐더가 있는 비싼 바에서 제 값의 10배 씩 주고 양주를 사먹는 것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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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석 | 2010/10/02 20:56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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