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노란색
2010/06/02   롱기누스의 창
롱기누스의 창
  예수를 찌른 롱기누스의 창에는 다양한 의미가 부여된다. 예수라는 신적 존재를 죽인 유일무이한 절대적 힘의 상징, 즉 신기神器로 여겨지거나 혹은 예수를 고통 속에서 구원했다는 의미에서 성물聖物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난 성물이라는 해석에 더 납득이 간다. 예수를 죽인 것은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롱기누스-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가 아니라 로마의 정치적 음모였다. 창에 찔리지 않았더라도 예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예수에게 죽음을 통한 평안을 준 도구라는 해석이 신에 가까운 존재를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해석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신화적인 해석이고 감상적인 접근이다. 롱기누스의 창을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김규항의 <예수전>에 따르면 예수가 로마에게는 사상적으로 위협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던 민중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며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가 로마의 지배계급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으리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결국 로마는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의 말살을 위해 예수를 골고다 언덕에 매달았지만 그의 죽음은 오히려 화약처럼 내재되어 있던 민중들의 의식을 폭발시켰다. 롱기누스의 창은 뇌관이었던 셈이다.

  한국사회의 최근 1년간은 80년대 이후 진보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향기가 가장 짙은 시기였다. 계기는 한 국가의 수장이었던 이의 자살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좌파정권 10년이라 불리던 지난 두 정권동안 진보적 가치관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졌다. 개혁세력이 진보를 자처하는 당혹스러움 속에서 진보는 그저 이상주의나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그 개혁세력 가운데 노무현이 있었다. 노무현은 진보주의자라기보다는 낭만주의적 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 굵직한 사안들에 보수적 정책으로 일관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에 대항했던 향수가 짙었던 탓에 그는 진보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그의 자살은 적지 않은 여파를 불렀다.

  노무현의 죽음은 창이었다. 그것은 한국 정치지형의 스펙트럼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깨진 틈사이로 붉은색이 아닌 노란색 이념이 밀물처럼 스며들었다. 파란 렌즈를 통해 바라 본 그것은 붉은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노란색의 의미는 反보수나 진보 혹은 개혁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反수구의 색이다. 응축된 표상이 폭발하면서 반수구적 공기가 퍼진 것이다.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작년 5월을 기점으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졌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국민의 이해를 거스르는 정책과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이 결합했던 것이다. 그것은 한국정치의 보수성으로부터 탈피하자는 이성적인 목소리라기보다 차라리 감성의 영역에 가까웠다.

  명백한 한계다. 80년대 한국을 지배했던 이념적 토대는 계급적 문제의식이나 근본적인 민주화가 아닌 반독재의 정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의 열정은 절차적 민주화를 이룩한 채 90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허물어졌다. 표면 위에서 다루어지는 변혁이란 거품처럼 흩어질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허나,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도 처음부터 이성적인 논리가 조합되면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희망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물론 지금의 변화가 가져올 모습이 한국사회가 도달해야할 궁극적인 지점은 아니다. 희망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말도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소통이란 감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지나치게 비관적일 이유도 없다.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by 유민석 | 2010/06/02 23:30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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