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군대
2010/05/03   때늦은 떡밥
2010/02/11   막장 졸업식? [2]
2010/02/06   본격 군대에서 작업한 이야기 [3]
때늦은 떡밥

   군대에 가는 사람은 두 종류다. 군대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과 군대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 정말이지 이 나라가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전장에서 스러지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몇 명과, 장교로 성공해서 사회적 위신도 챙기고 제법 안정적인 경제력을 보장받길 원하는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끌려’간다고 보면 된다. 군대에 안 가면 대신 감옥을 가야하니 가는 것이고, 집안이 동생과 자신의 학비를 같이 부담할 형편이 안 되니 가는 것이고, 도무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말뚝 박으러’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이른바 최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정, 재계의 인물들과 그 자제들이 군대를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 따위야 찜 쪄 먹고도 남는 인간들을 눈 밖으로 쳐낸 채 천안함의 희생자들을 두고 ‘나라를 위해 순국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역겨운 짓이다. 묘비도 세울 수 없는 서해바다에 가라앉은 46명의 죽음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나라에 의한’ 것이었다. 권력과 제도가 끈덕지게 붙어먹고 비어버린 자리가 그들의 죽음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사지 멀쩡한 남자는 군대를 가야한다는 거짓말이 팽배한 나라에 태어난 게 원죄요,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니 그것 또한 죄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을 두고 온갖 괴소문과 음모가 팽배한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이 나라의 군대 그 자체다. 한국의 군대만큼 패악과 부정이 융성한 집단은 세계 역사를 통째로 들춰봐도 흔치 않다. 일부러라도 어느 한 집단의 내, 외부를 이만큼 악덕으로 덧칠하기란 쉽지 않을게다. 내부의 썩어 들어간 양태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외부적으로, 즉 군대가 정치, 사회와 관계를 맺을 때 얼마나 참담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지 않던가. 한국 현대사에서 군대가 거론되는 부분은 대개 상식 밖의 사건과 연루되었을 때다.

   예를 들면, 북한과의 문제가 그렇다. 북한을 바라보는 모순된 시선은 정말 우스운 것 중 하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북한의 군대에 비해 남한의 군대가 얼마나 뛰어나며 강인한가를 침이 마르고 입이 닳도록 광고하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남북한 군사력의 양적 비교를 통해 북한이 여전히 두렵고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려 애쓴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동시에 광대토대왕의 긍지를 이어받은 북벌의 기개를 설파하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몰상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끔찍한 자화상이다. 더불어 언론은 그에 화답한다.

   지금 언론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이 북한인가 아닌가하는 위태로운 이분법이다. 이건 그저 북한사람들의 머리에 뿔이 있나 없나를 고민하던 해묵은 반공의식의 재가공이다. 김일성을 인민복 입은 돼지로 그리던 만화만 사라졌을 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반도에 군사대치가 지속되는 이유와 무고한 20대 청년들이 인간 취급도 못 받아가며 제 청춘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희석되어왔다.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김정일의 지시로 어뢰를 쏜 건지, 김일성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다 에네르기파를 쐈는지, 한나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굿판을 벌였는지 따위의 음모론을 밝혀내면 앞으로 배가 침몰하고 헬기가 떨어지고 나라를 지키라고 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사라질까? 그보단 차라리 합참의장이 왜 군번줄을 매지 않았는가에 대한 잡담이 더 건설적일 것이다. 간부 뒷담화는 스트레스 해소라도 될 테니까. /끝
by 유민석 | 2010/05/03 18:18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막장 졸업식?

학교가 감옥 같다고 느끼는 건 지금 세대나 내 세대나 내 앞선 세대나 다 똑같다. 머리 좀 길렀다고 복도에서 뒤통수 맞아가면서 빡빡 밀렸고(도대체 학교에 바리깡이 왜 있냐), 야간자율학습인지 야간의무학습인지 아니면 구류인지 모를 지랄을 2~3년 동안 했다. 어쩌다 가끔 해 떠 있는 동안 집에 가더라도 메가스터디에 돈 갖다 바치러 가야했고, 중간 기말 중간 기말 리듬감 있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다음에, 잊을만하면 모의고사 친다고 또 책상 줄을 맞춰야 했다. 어떤 체육선생은 자기가 한 30분 자다가 늦게 나왔으면서 그 사이 떠들었다고 14살 먹은 꼬꼬마 애들을 일렬횡대로 모셔놓고 죽빵을 날렸다. 학창시절 선생 중에 좋았다고 기억되는 선생들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체벌은 필요 없었다. 행여나 체벌을 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근거와 정도를 냉철하게 지킬 줄 알았다. 그 한 줌의 스승들을 제외하고는 학생을 인간으로 보는 선생이 없었다.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이 책임도 없고 근거도 없는 말 한 마디에 팔, 다리, 대가리가 죄다 잘린 채로 12년을 보냈다. 요즘 나보다 어린 애들이 ‘요즘 애들은 쯧쯧’하면서 벌써 어른의 얼굴이 되어 있던데 그 어른이 바로 너희들이 그렇게나 경멸하던 ‘꼰대’다. 뭐가 진짜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지금보다 고딩이었던 당신이 더 잘 알거다. 궁금하면 과거에게 물어보라. 막장 졸업식은 한국에서 태어난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맛보는 해방감이 폭발한 모습이다. 학교가 그렇게 ㅈ같은 곳이 아니었다면 졸업식이 막장일 이유가 없다. 한없이 팽창하는 것을 갈수록 옥죄기만 하니까 나중에 빵-하고 터지는 거지.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다시 고3으로 돌아가도 그런 말 나올까? 대학 떨어져서 자기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세상에? 과거는 참 미화하기 쉽죠? 그러고 보니 세상을 좀먹는 건 사실 ‘미화된 과거’일지도 모르겠군.

PS. 군대가 뭐 같다고들 하는데, 군대 가면 안다. 군대와 학교가 얼마나 똑같은지.

by 유민석 | 2010/02/11 21:37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2)
본격 군대에서 작업한 이야기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줄이 끊어졌다. 반쯤 갈라져 덜렁거리던 러버밴드의 마지막 남은 0.5cm가량의 이음새가 세월의 무정함과 주인의 괴벽으로 인해 그 생을 다한 것이다. 도로아미타불, 합성화학품으로 태어나 이리 쓸리고 저리 꺾이며 모진 세상 한 목숨 다해 제 할 일 다 하고 떠난 시계줄에 깊은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내 깊은 조의와 함께 제 기능을 잃어버린 덩어리는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울지 마라. 21c는 잔인하단다. 없는 일을 찾아 유유히 표랑하려 할 때 왼손에 들린 또 다른 덩어리의 부피감이 느껴졌다. 왼쪽 팔을 잃어버린 돌고래표 몸통이다. 벽걸이 전자시계로 쓸까 하다 구질구질해 지는 게 싫어 그의 좌수左手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했다. 진실로 매몰차고 매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아까도 말했듯이 21c는 잔인하니까.

군대의 유일무이한 장점은 복잡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먹고 싸고 자면 그만이다. 오래된 시계줄 하나 끊어먹었다고 청천벽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사실 내 주변엔 시계가 넘쳐난다. 인간 시계들이.

“몇 시야.”
“17시 30분입니다. 저녁 때 다 됐는데 말입니다.”

아주 친절하게도 내 스케줄까지 읊어준다.

분대장님 기상입니다.
분대장님 점호입니다.
식사하러 안 가십니까?
분대장님, 분대장님, 분대장님, 분대장님, 분대장님, 분대장님…….

“알았어. 이 새끼야.”

알람처럼 울려대는 시기 적절한 언사들에 괜히 신경질이다. 폭언과 욕설이 일상화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밑의 놈 하나는 그저 멋쩍게 웃어버린다. “씹새야. 나도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음이 틀림없다. 내가 그랬거든.

괜히 찔려서일까. 전투모를 꼬나 쓰고 바쁜 걸음으로 나선다. 왼손을 스치는 여름 바람이 횡하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새삼 깨닫는다. 1년 7개월 간 벗어 놓은 적이 없는 시계다. 작대기 네 개를 이마에 박아 넣으면서 자연스레 내 손목을 떠났다. 28℃의 날씨에도 어쩐지 서늘함이 느껴져 왼손목을 살포시 감쌌다.
머리통이 뚫릴 듯한 햇살 속에서 누가 말했다.

“야, 이 날씨에 더워서 어떻게 집에 가?”

정신병자 같은 소리다. 집에만 보내준다면 사막에서 모피코트를 입으라고 해도 기꺼이 입겠다. 내일이면 민간인이 될 인간은 너는 짖어라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난 알 수 있다.
거칠게 얼싸 안은 후 내게 말했다.

“2년 진짜 금방 가더라. 뻥 안 치고 눈 감았다 뜨니까 전역이야.”

앞으로 포옹은 여자하고만 하겠다고 다짐하며 씩 웃어 줬다. 금방 가면 1년만 더 하지 그래? 가는 뒷모습 속에서 불현듯 시계가 생각났다. 투박하고 촌스러운 디자인, 남조선의 군대가 아니면 어떤 곳에서도 온전한 조화를 이루지 못할, 싸구려 돌고래표 내 시계. 몇 시지? 몇 월 몇 일더라?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될 걸, 쓸데없이 하늘만 쳐다본다. 해가 저 쯤이면 몇 시더라. 몇 월 몇 일이지, 오늘이? 내 군생활 얼마나 남았지? 1년 7개월 동안 나 뭐했지?

찰나를 꿈꾸는 건 누구나 매한가지다. 돌아보면 말은 쉽지. 초침을 이정표 삼아 한걸음 씩 걸으라면 누군들 넌더리가 안 나랴. 인간은 대개 절대적인 건 상대적으로, 상대적인 건 절대적으로 느끼고, 말하며, 생각하곤 한다. 요컨대 제 멋대로라는 소리다. 세상이 참으로 빌어먹어서 그렇다. 정신적 해갈이 절실한 거렁뱅이 같다. 그래서 말했잖아. 잔인하다고.
그래서…… 지금 몇 시라고?

“집합입니다.”

옳거니. 누군가에겐 끝나는 시간이 누군가에겐 시작하는 시간인게지. 내 젊음은 꽃비 내리는 향연이 아니라서 첩첩산중 속에서 자연의 풍취를 방광까지 흡입할 여유가 없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런 삽질은 좀 그만합시다. 비만 오면 도로가 걸레 되는데 3km를 걸어가면서 곡괭이질, 삽질을 얼마나 하는지 아시려나? 군대에 신이 있다면 결코 자비롭다할 수 없을지어다. 병영의 신, 병신.

10분간 휴식입니다.
10분간 휴식입니다.
10분간 휴식입니다.
10분간 휴식입니다.
10분간 휴식입니다.


인간 알람시계들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개 빠져서 말이야. 휴식이라니까 빛의 속도로 주저앉는다. 아무튼 요즘 것들. 나 이등병 땐 blah blah blah⋯⋯. 어쨌든 좀 쉬자. 삽자루를 기대고 누우니 비릿한 흙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흙은 필시 수백만년에 걸친 지각변동과 역사를 같이 했음이 틀림없다. 태초로부터 시간을 밟아 내 머리맡에서 인고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게다. 작은 흙 알갱이 하나에 지난 1년 7개월이 숙연해지고 만다. 그래도 흙이 욕 먹으면서 삽질할 일은 없잖아. 미래에서 돌아보면 참으로 박복하다고 푸념할 내 인생이어라. 끊어진 건 시계줄이 아닌 젊음의 줄기였노라.

시작하시랍니다.
시작하시랍니다.
시작하시랍니다.
시작하시랍니다.
시작하시랍니다.


역시 휴식은 찰나와 같다. 내 군생활이나 좀 그래봐라. 에이 썅. 허공에 대고 욕질을 했는데 소심한 놈 하나가 내 눈치를 살핀다. 미안, 알잖아. 근본없는 놈인거. 1년 7개월 간 일만 칠천 번은 넘도록 삽질을 한 것 같은데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시간이 약이라고? 이만한 장기 복용도 효과가 없잖아. 모르는 게 약이야?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게 약이긴 하지. 그게 안되니 문제가 아니겠나. 아 더워. 몇 시야?!

“16시 30분입니다.”

끝날 때가 다 됐군. 30분 지나면 손 하나 까딱 안 할 거다. 담뱃불보다 지글거리는 날씨 속에서 이만하면 많이 했다. 5월이 잔인한 달이라지만 사하라같은 8월보다 더 할까. 잔인하다 못해 잔혹하기까지 한데. 하지만 간부보다 더 잔인한 건 없지.

“18시까지 하고 간다.”

역시 요즘 세대는 유행에 민감하다. 21세기의 코드는 잔인함으로 판명나는 순간이다. 시계 내다버리길 참말 잘한 것 같다.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근데 약효가 없네? 내 시간은 언제쯤 끝이 올까. 5000번의 삽질? 130번의 점호? 26번의 햄버거?

2번의 살인 충동을 느꼈지만 일단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어차피 내일 모레면 또 하게 될 테지만, 그 때 그 사람, 아니 그 삽질은 잊겠지만. 서걱거리는 발걸음에 흙뭉치가 튀어오른다. 아까 내 머리맡에 함께 누웠던 그 놈이다. 무심한 발바닥으로 땅에 비벼 주었다. 넌 니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거라. 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걸었다. 여름해가 유독 길었다. /끝
by 유민석 | 2010/02/06 22:03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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