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그러하기를

  ‘이게 착각이었으면….’할 때가 있고 반대로 ‘이게 착각이 아니었으면….’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간사하다는 말이 썩 적절한 듯도 하다. 그렇다고 이중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관성이 있다고 해야 맞다. 들꽃을 꺾어다 꽃점을 치는 것처럼, 단지 기원이나 소망과 같은 것이다. 감정이 생각을 짓누르면 역설적이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버릇처럼 현상의 원인을 찾으려 우왕좌왕하며 잡념 속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헤어 나올 구석이 없어 손을 휘적거리다 지푸라기랍시고 잡은 게 알고 보니 싱싱한 꽃 한 송이다. 그러면 그냥 바람에 한 점씩 흩날리도록 두면 될 터인데 그게 안 된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떼어낸 꽃잎을 애써 모른 체하며, 결국에는 손에 든 줄기마저 셈하는 궁색함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처음부터 선택지 없는 점괘를 든 채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소망했다.

  이따금씩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설 때, 우리는 스스로가 아닌 무언가에 의한 확신과 대답을 구한다. 그래서 사람은 종교를 갖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종교적이다. 누구나 초월적인 무언가에게 구원을 바랐던 경험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그를 신으로 구체화할 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원하고 소망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꽤 흔하게 찾아온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게 고작 절망하지 않는 것 밖에 없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절망적인 일이다. 나는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일’에 스스로가 흔들리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간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허나 절망의 순환을 끊어낼 묘책 같은 것은 없었다. 그건 인간 두뇌의 초당 싸이클 한계치를 넘어서는 영역이었다. 이성과 논리로 모든 삶의 단면을 해독하는 일은 그저 자기방어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불어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입술에서, 혹은 손끝에서 흘려보내기를 주저했었다. 창문 밖이 어둡지 않았다면 음악도시의 신파적 사랑이야기 같은 건 듣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껏 간드러질 수 있었던 건 밤 열 시부터 자정까지의 이소라의 목소리가 ‘난 행복해’라며 노래하던 목소리보다 조금 더 짙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감수성의 상실을 위무하는 일에 지쳐있을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균열을 만들어냄으로써 관계 맺는 법을 알게 되었다. 완벽함이란 실은 무엇보다 불완전한 것이다. 거꾸로 불완전함이 어쩌면 완벽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성을 갖추지 못한 인간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인간성의 본질적 불완전함을 내포한 인간은 그 불완전함 때문에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다. 나는 그걸 좀 늦게 알았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첫인상을 물었다. 철 같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웃었지만, 맞다. 긁히는 일도 없고 부러지는 일은 더더욱 없기를 바랐다. 그래서 어지간한 열기에는 뜨거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단단해지기만을, 불행해지지 않기만을 소망했다. 그것만이 나를 지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이젠 완벽이란 모든 걸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결핍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안다. 단단해지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고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지금은 예이츠와 노희경과 오렌지향이 있는 대학로의 어느 카페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그럼에도 애꿎은 들꽃을 꺾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저 계절이 끝나면 겨우내 내가 뜯어낸 꽃잎만큼 행복해 질 것을 믿는다. 부디 그러하기를 소망한다.

by 유민석 | 2011/01/30 22:30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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