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에 대하여

  난 내 속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못된다. 그런 고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상담을 원하거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그럴 능력도 없다. 내가 그네들의 고민과 고통을 나누고 감싸줄 만큼 이타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삶의 경험이 풍부한 것도, 어떤 말끔한 해결책을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오늘처럼 갑작스레 누군가의 가슴이 무너져 내린 날, 그 순간을 함께한 이가 나일 때 꽤나 곤란해지는 것이 그런 연유에서다.

  아니, 사실 곤란할 건 없다. 다만 마음이 불편하고 -지은 죄는 없지만- 조금 미안할 뿐이다. 위로받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도 알지만, 내가 대신 해결해 줄 문제도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가만히 두기엔 분위기를 잠식하는 무력감을 서로가 견뎌내기 힘들다. 뭐, 결국엔 아무 말도 못했다. 내 경험에 충실하여, 가만히 놔두는 쪽을 택했다. 아마 그도 나에게 뭔가를 바란 것은 아닐 게다. 어차피 뭔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는 서툴고 가벼운 겉치레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상대도 나도 괴로운 그런 말은 안하느니만 못하잖나. 난 차라리 침묵을 고른 거다.

  위로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쿨한 척을 하지만 나도 사람 아닌가. 당연히 감정이 불안하고 우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힘내.”, “괜찮아.”와 같은 빤한 위로라도 마음을 달래는 데에 얼마간 도움이 된다. 어릴 적에는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하는 그런 말들을 강박적으로 싫어했다. 세상에서 가식을 걷어내야 인간이 올바르게 살 수 있다고 믿었고 때문에 다른 이의 상처를 헤집고 다니는 일에 열성을 보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상처는 겉으로 드러나야 치유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때는 사람들의 정신적 방어력과 치유력을 고양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악역을 맡더라도 상관없다는 상당히 영웅적인 마인드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종의 폭력이었지만 난 모두가 그 정도의 따끔한 자극은 견뎌내고 일어서기를 바랐다. 그러던 중 내 스스로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경험한 뒤, 비로소 내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때서야 보잘 것 없는 위로의 말 한 마디도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위로에 서툴다. 감정을 보듬어달라는 듯한 눈빛을 읽을 때나 어두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듯한 말을 들을 때면 숨이 막힌다. 벙어리가 된다. 잘 될 거야, 괜찮아, 힘내 이런 짧은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입술을 떼는 일이 힘겨워진다. 위로의 말을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사과를 하는 것은 용서를 강요하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테다. 같은 논리구조를 따른다면 타인에게 어두운 감정을 내비치는 것 또한 위로를 강요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위로는 어떤 의무감으로부터 비롯될 위험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점을 경계하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가끔은 외적 문제의 해결보다 내적 심리의 치유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의무감을 걷어낸 위로란, 이성이 잠식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내 자신에게조차 음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by 유민석 | 2011/01/06 01:24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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