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이해에 관한 뻘소리

가끔 남의 가슴 한켠을 후벼내어 무너뜨리면서까지 남을 이기려 드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어릴 적에 내가 그랬음에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경우엔 내가 누구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하찮은 누군가를 만들어냄으로써 제 스스로의 만족감을 챙기려 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얘보단 좀 낫지, 와 같은 극도의 찌질함을 표현하는 뒤틀린 자위였다. 치부를 들춰냄으로써 얻는 자기만족이란 거 참으로 역겨운 건데 말야. 다른 사람들은 왜 그럴까나.

 

한 때 나는 진실된 세상을 꿈꾸며 내가 마치 정의의 사도가 된 것마냥 그렇게 위선을 폭로하고 다녔더랬다. 난 모두가 솔직한 세상이 오면 좀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갈수록 나와 사람들은 엇나갔다. 사람들이 착해서 그런지 나에게 대놓고 욕은 못 하는 대신 멀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수근거렸다. 그러려니, 언젠가는 내 진심이 전달되리라,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가련다. 이러고 살았다.

 

그게 아닌가 싶다. 4년 전 누군가가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체념했을 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작년에 누군가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소통이 뭐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대답은 하지 않은 채 회의감을 밀어내려고만 했다.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간 지식인에게 얼마 전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정말일까. 정녕 그런 것일까. 경험에 반추한다면 도무지 반박할 여지가 없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누구를 이해했던 적이 있을까. 한 번이라도 누가 나를 이해했던 적이 있을까. 자신있게 대답을 못하겠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소통의 가능성을 믿었고 한 편으로는 지구 어디엔가 나를 이해해 줄 누군가가 있으리라 믿었다. 이제는 확신이 없다.

 

근데 우리가 소통을 할 수 없다면 지금 우린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매일같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밤을 새면서 통화를 하고, 술기운을 핑계로 속내를 털어놓고, 메신저 창을 5~6개씩 띄워놓은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는데, 소통과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는걸까. '어느 정도'의 메세지 전달만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딱 그 정도로 만족하는 건가?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이 쯤 해서 유명한 철학자의 이론이나 명구를 끌고 오면 좋겠는데 난 철학같은 건 하나도 몰라서 그런 건 못하겠다. "아무개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그런 거 말이다.

 

'이해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대화는 계속된다. 메세지는 끊임없이 오고간다. 어제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사실은 전달할 수 있지만 사과의 맛은 전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란 불완전하다. 그림과 음악으로는 전달할 수 있을까? 그것도 힘들 것 같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사과의 상큼함은 수신자의 기억으로부터 산출된다. A는 단지 A'로 전달된다. A'라는 메세지를 받은 수신자는 스스로 갖고 있는 B로부터 A'를 끌어낸다. 수신자는 그저 상큼함이라는 '언어'를 이해할 뿐 '상큼함'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구구절절 기호학자 아니면 철학자 흉내를 내보니 정말 소통과 이해라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소통과 이해라는 가치에는 도달할 수 없지만 그와 가장 가까운 무언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결국 수신자의 기억과 무의식, 감수성에 의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똥을 똥이라고 하면 참 싫어한다. 똥을 된장이라 하는 것을 차라리 좋아한다. 또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똥이 똥인 건 진리이고 진실인데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야, 그거 똥이야."라고 하면 대개 이런 응답이 돌아온다. "맞는 말인데~ 블라 블라 블라~. 아무튼 난 인정 못함." 이거 이해했다고 할 수 있나?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아무리 합당하다해도 인정을 못한다. 나와 상대가 같은 정보를 같은 매커니즘으로 '이해'했다면 상대가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

 

아 졸려. 그만 써야지.

by 유민석 | 2010/11/16 14:27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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