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
  몇 주 전, 누군가가 고양이를 패 죽여 아파트에서 던져버린 사건이 화제가 되었었다. 이 사건은 어이없게도 채식주의자와 육식옹호론자들의 사이의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극악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의 고기는 아무렇지 않게 먹으면서 고양이의 죽음에는 분노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한국의 거의 모든 논쟁이 그렇듯 보기 참 안쓰럽다. 이 문제를 육식 vs 反육식으로 이야기하니까 우왕좌왕하는 거고 난독증 쩌는 병신들이 양산되는 거다. 핵심은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자세다.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할까. 목축과 사육은 근본적으로 동물의 본성에 위배되는, 그저 인간을 위한 시스템이다. 요컨대, 난 ‘윤리적 사육’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육 자체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을 기르는 것은 이미 동물을 인간의 하위 개체쯤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애완동물을 위한다는 행위는 사실 인간을 위한 것이다. 정확히는 동물의 지배자(주인)로서 인간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다. 식탁에 올라가는 닭의 운명은 동정하면서 제 애완견의 화학적 거세에는 주저함이 없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서글픈 혼란이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채식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가 은폐하는 문제들이다. 기아문제가 대표적인데, 난 채식으로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동물이 먹는 곡물을 사람에게 돌려주면 된다는 주장에는 동물들이 그토록 극악한 환경에서 도축당하는 이유에 대한 무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축의 비육이 근절되어 잉여자원이 된 곡물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지구의 거의 모든 재화가 그렇듯 곡물 또한 자본의 손아귀에 있다. 제 3 세계의 식량 주권이 박탈당한지 오래인 현실에서 동물의 먹이로 사용되던 곡물이 굶주리는 이들의 배를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이 무슨 순진한 발상이란 말인가.

  이 시스템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육식을 위한 욕심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한 욕심이다. 가축의 비육이 비윤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고 동물의 먹이가 인간의 식량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곡물을 인간에게 먹이는 것보다 동물에게 먹이는 것이 더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채식주의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윤리적으로 사육당해 도축된 육류조차 먹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채식주의는 한낱 공허한 원칙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by 유민석 | 2010/07/13 00:32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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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atumdei at 2010/07/13 07:08
명확한 인식이자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육식을 안하기 시작했지만 채식이 좋은 것이지 채식주의자는 될 생각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jinhwa at 2010/09/24 01:37
저는 식량의 재분배문제라던가 환경오염까지 가지도 않고, 그냥 일신의 건강을 위해서 대량 생산 육류를 먹어야하나 고민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궁금해하던 부분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시는 글이었네요. 채식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입장이지만, 그것을 실행함으로 곧바로 푸르고 배고픈자없는 지구가 된다는 주장은 역시 꿈일거라 생각했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는거지 at 2011/06/05 05:09
본문에는 '동물을 기르는 것은 이미 동물을 인간의 하위 개체쯤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말씀 하셨는데 무슨 근거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동물을 사랑으로 각별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유대가 있을 수
있는데 주인장의 발언은 이러한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언사 같습니다만.
이어서 말씀 하신 '애완동물을 위한다는 행위는 사실 인간을 위한 것이다. 정확히는 동물의 지배자(주인)로서 인간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다.' 이런 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다' 로 보는
것과 다를게 없지요.
그런식으로 어떤 행동이나 관계에 있어 자신이 알 수 없는 다른 관계의
특별한 감정이나 의미를 무작정 배제하고 본다면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것은 만족감을 위한 것이다' 와 다를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식탁에 올라가는 닭의 운명은 동정하면서 제 애완견의 화학적 거세에는 주저함이 없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이건 좀 비교가 잘 못
된 것 같습니다만.
식탁에 올라가는 닭의 운명을 동정하는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애완견을
화학적 거세에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 이신지요?
내가 주인장을 말을 이해 못하는건가요?
모든 채식주의자들이 자신의 애완견을 화학적 거세를 시키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기아 문제에 관한 주인장의 의견은 저도 공감합니다.
사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채식이나 육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문제지요.
언젠가 기아 인구는 비만 인구에 비례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구제할 정도의 뛰어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제도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사람들은 기아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지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굶어 죽던 말던 거의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하게 비교하면 동냥을 하는 부랑아에게 동전 몇 푼으로 선심을
베푸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지 육식을 하거나
채식을 하거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요.

주인장이 육식을 하는 사람인지 채식을 하는 사람인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님은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계시군요.
이는 채식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합니다.
님이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자본이나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뭐 그렇지 못 하는 사람들이 항상 논쟁을 만들기는 하지만요.
채식이 기아를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육식이 결국 범세계적인 기아를 촉진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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