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떡밥

   군대에 가는 사람은 두 종류다. 군대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과 군대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 정말이지 이 나라가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전장에서 스러지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몇 명과, 장교로 성공해서 사회적 위신도 챙기고 제법 안정적인 경제력을 보장받길 원하는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끌려’간다고 보면 된다. 군대에 안 가면 대신 감옥을 가야하니 가는 것이고, 집안이 동생과 자신의 학비를 같이 부담할 형편이 안 되니 가는 것이고, 도무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말뚝 박으러’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이른바 최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정, 재계의 인물들과 그 자제들이 군대를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 따위야 찜 쪄 먹고도 남는 인간들을 눈 밖으로 쳐낸 채 천안함의 희생자들을 두고 ‘나라를 위해 순국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역겨운 짓이다. 묘비도 세울 수 없는 서해바다에 가라앉은 46명의 죽음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나라에 의한’ 것이었다. 권력과 제도가 끈덕지게 붙어먹고 비어버린 자리가 그들의 죽음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사지 멀쩡한 남자는 군대를 가야한다는 거짓말이 팽배한 나라에 태어난 게 원죄요,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니 그것 또한 죄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을 두고 온갖 괴소문과 음모가 팽배한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이 나라의 군대 그 자체다. 한국의 군대만큼 패악과 부정이 융성한 집단은 세계 역사를 통째로 들춰봐도 흔치 않다. 일부러라도 어느 한 집단의 내, 외부를 이만큼 악덕으로 덧칠하기란 쉽지 않을게다. 내부의 썩어 들어간 양태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외부적으로, 즉 군대가 정치, 사회와 관계를 맺을 때 얼마나 참담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지 않던가. 한국 현대사에서 군대가 거론되는 부분은 대개 상식 밖의 사건과 연루되었을 때다.

   예를 들면, 북한과의 문제가 그렇다. 북한을 바라보는 모순된 시선은 정말 우스운 것 중 하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북한의 군대에 비해 남한의 군대가 얼마나 뛰어나며 강인한가를 침이 마르고 입이 닳도록 광고하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남북한 군사력의 양적 비교를 통해 북한이 여전히 두렵고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려 애쓴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동시에 광대토대왕의 긍지를 이어받은 북벌의 기개를 설파하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몰상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끔찍한 자화상이다. 더불어 언론은 그에 화답한다.

   지금 언론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이 북한인가 아닌가하는 위태로운 이분법이다. 이건 그저 북한사람들의 머리에 뿔이 있나 없나를 고민하던 해묵은 반공의식의 재가공이다. 김일성을 인민복 입은 돼지로 그리던 만화만 사라졌을 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반도에 군사대치가 지속되는 이유와 무고한 20대 청년들이 인간 취급도 못 받아가며 제 청춘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희석되어왔다.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김정일의 지시로 어뢰를 쏜 건지, 김일성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다 에네르기파를 쐈는지, 한나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굿판을 벌였는지 따위의 음모론을 밝혀내면 앞으로 배가 침몰하고 헬기가 떨어지고 나라를 지키라고 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사라질까? 그보단 차라리 합참의장이 왜 군번줄을 매지 않았는가에 대한 잡담이 더 건설적일 것이다. 간부 뒷담화는 스트레스 해소라도 될 테니까. /끝
by 유민석 | 2010/05/03 18:18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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