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이 되는 방법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장 시끄러웠던 문제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논쟁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뭔가 찝찝하다. 정체불명의 자유주의와 책임론이 등장한다. 질질 흐르는 콧물을 흡입하는 옆 짝꿍에게 손에 방귀를 모아 먹이던 시절부터 우리는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가정 아래 권리의 행사는 자유라고 배웠다. 제 손으로 이명박을 뽑았든 투표권을 포기해서 학생회 없는 학교를 만들든, 분뇨의 향이 배어있을지언정 자기 손으로 집어넣은 투표용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면 가타부타 떠들어댈 이유가 없다.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으니 찬성을 했거나 반대를 했거나 투표를 안 했겠지. 내 찝찝함의 이유는 그보다 중요한 점이 논쟁의 중심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것, 정말 그것만으로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투표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로 싸우는 것은 학내 민주주의와 관련한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정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재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대학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엔 회의적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말은 참 좋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주인 노릇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학교의 주인은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이어야 맞다. 정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감상적 당위로는 우리 손으로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즉 실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의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학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총장이나 이사장? 아깝지만 틀렸다. 정답은 바로 자본이다. 굳이 기업에 인수되지 않았더라도 이미 학교는 기업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지금 학교의 모습에서는 수익추구 이외의 어떤 목적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등록금을 둘러 싼 학교 측과 학생들 간의 갈등, 총학선거 참여율 저조, 학점 인플레, 배치표 문제, 로스쿨과 약학대 유치전 등 대학과 관계된 거의 모든 문제는 자본의 논리에 귀속된 현 세태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권리의 쓰임새와 책임, 절차적 민주주의 등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지금으로선 큰 의미가 없다. 원론에 부딪쳐 나아가질 못한다. 커다란 담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이 대학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난 SAY를 아주 싫어한다. 그들에게선 도무지 학생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영합주의에 순응해버린 학생대표에게선 조금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허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SAY가 아니라 SAY와 같은 성향의 학생회가 등장한 배경이다. SAY의 지지도는 학생들의 성향을 전적으로 보여준다.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왜 투표율은 과반수 넘기가 힘들고, 왜 학생회 후보군은 달랑 하나이고, 왜 그것마저 고작 SAY인가, 또 그 때문에 반대표가 당선의 힘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는 왜 발생하는가?

  혹자는 이 모든 게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의 결과라 말한다. 그렇다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자. 일단 참여율 저조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다시 투표율 하락, 일방향성의 후보군, 더 나아가면 아예 학생회 공석이라는 상황을 불러온다. 이미 우리는 몇 번 그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요컨대, 정치 활동의 위축이다. 그럼 자연스레 학생들의 목소리엔 힘이 빠진다. 응집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측의 힘은 강해진다. 정치적 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제기랄, 역시 투표 백날 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치에 회의를 느낀다. 무감각해진다. 다시 참여율은 떨어진다. 무한반복. 아,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 뒤편에 자본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자본이 학교를 잠식한 데에는 모종의 음모론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자본주의가 의식화되면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투표율이 저조한 이유는 우리 손으로 만드는 정치로 인해 무언가가 바뀔 거란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바(자본주의적 논리로서의 성공)와 우리가 인식하는 문제의 근원이 모순된다는 사실에 그 원인이 있다. 이를테면, 등록금 문제가 그렇다. 등록금인상에 반대하여 학교 측을 적대시하는 학생은 많다. 하지만 학교 운영진과 이사회를 적으로 간주하면 우리에겐 고작 등록금 좀 깎아달라고 사정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학교의 목적이 수익추구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해 고민해야 해결법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투표가 자유인지 자위인지 하는 논쟁이 소모적으로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든 현 체제를 문제 삼지 않는 한 우리가 학교의 주인이 되기란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한데 ‘투표권의 포기는 더 큰 권리를 위한 작은 권리의 포기’나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격’ 따위를 운운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우리만의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해서 우리가 주인이 되는 건 아니란 소리다. 손가락으로 바다를 휘젓는다고 모래 밑에 게가 꿈쩍이나 할까. 그보다는 대학, 더 크게는 사회, 본질적으로는 우리 안에 의식화된 자본주의에 의문을 가질 때 답이 보인다. 촘스키가 말했듯이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건 자본이다. 우리가 진정한 우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본 아래서 논의되는 민주주의란 공허할 뿐이다. @post-it

 

 

by 유민석 | 2010/04/05 23:43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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