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과 대자보(수정)

‘고대 자퇴女’ 김예슬이 두려운 사람들 by 프레시안
나의 대자보+단상들+공연소식 by 박가분

위 두 개의 글이 가장 정리가 잘된 느낌이다. 이 밑에 있는 건 좀 후졌지만 뭐 그러려니.

....하려고 했는데 너무 후져서 수정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지난 3월 10일, 고려대 정경대학 한 귀퉁이에 붙은 대자보가 세상에 작지만 분명한 여파를 불러왔다. 영문과에 재학중인 복학생 유 모씨가 전공, 토익과 개싸움을 벌이던 와중이었다. 옆 동네 학교에 다니던 한 여학생이 ‘뭐 같아서 못해먹겠다’며 배부른 돼지들이 쌓아올린 상아탑의 심장에 소크라테스적인 비수를 꽂아버렸다. “배고파도 인간으로 살어리랏다.” 불순하기 짝이 없는 휴머니즘 선언이었다.

  작은 소란의 원인은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의 자발적 퇴교 선언문이었다. ‘결국 이런 날이 왔구나.’라고, 난 노가리를 우물거리며 중얼댈 뿐이었다. 몇 년 전, 다이나믹 듀오는 노래했다. “미친 세상에 정상인 것조차 이상해.” 아직까지 가사가 마음에 닿는 걸 보니 가히 명곡이다. 아니면 세상이 변한 게 없거나. 제 모습이 무엇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만큼 뒤틀린 이 나라와 대학의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한 현실에 반대하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뒤틀린 결 사이로 튕겨 나오는 불순물(?) 하나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소신있는 결정을 응원하는 글부터 나처럼 행동보단 말뿐인 사람을 비난하는 목소리, 이 나라의 현실을 저주하는 외침 등 각양각색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나 이런 불순한(?) 이슈엔 언제나 날 서린 눈초리도 있는 법이다. 현실을 모른다는 둥, 운동권 스펙 쌓으려는 빨갱이라는 둥, 다른 학생의 선택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둥 비난 또한 만만치 않다. 이는 ‘꼰대스러운’ 훈장질 아니면 근거없는 음모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열폭,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다른 건 무시하더라도 현실인식 투철한 듯 보이는 반응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 놈의 훈장질, 나도 한 번 해보자. 현실이 어쨌다고?

  박제가 되어버린 슬픈 짐승, 아니지. 꼰대가 되어버린 슬픈 20대를 아시는가? 우리는 지금껏 패배하는 법을 배워왔다.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된다고 하던 어른들이 언제부턴가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며 공부나 하란다. 과연 살아보니 그렇다. 현실, 그거 만만치 않더라. 그리고 우리는 ‘꿈과 현실의 괴리’라는 거대한 물음표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현실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졌다. 180cm이하가 아니라 180m이상이라 한들 루저일 뿐이었다. 걔 중엔 물론 위너도 있었다. 그들은 국가고시에 합격하거나 인터넷 창업으로 성공한, 말하자면 20대의 ‘좋은 예’였다. 허나 꿈같은 이야기였다. 대통령이 되겠다던 꿈만큼이나 멀어보였다. 우리에게 보다 가까운 승리자들은 각종 스펙을 바탕으로 이름 높은 기업에 들어간 이들이었다. 세상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정답이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답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는 진 셈이다. 우리의 패배의식은 그렇게 심어졌다. 이제는 친구에게 또 후배에게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한다.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아.” 그렇게 경멸은 대물림된다.

  이 과정에서 원인은 사라지고 말았다. 현실에 맞추길 강요하는 원칙주의만이 남았다. 대기업에만 취직하려 하니까 취업을 못한다는 말이 등장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소유의 미덕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하지만 모든 이가 해탈에 이를 수는 없을뿐더러 모든 이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적어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한,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경제력에는 적정선이 있다. 문제는 저 ‘정답’에서 벗어났을 때 그 ‘적정선’에 닿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개개인의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이 되거나, 창업에 성공하거나 또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때문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로 취업난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정당하지 않다. 순서가 틀렸다. 무엇보다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적어도 취직에 있어 인간의 탐욕에 대한 윤리적 성토는 그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무소유를 주장할 때가 아니다.

  한국의 대학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는 이미 정해져있다. 3.5이상의 학점과 토익, 토플점수, 6개월에서 1년에 걸친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경험, 몇 가지의 자격증, 봉사활동 이력, 인턴경력 등이다. 여기에 조금 편한 사회생활을 위한 인맥뚫기도 포함된다. 선언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자발적으로 퇴학’한 것이 아니라 ‘대학을 거부’했다. 학문으로부터 벗어난 게 아니라 학교로부터 벗어났다. 정확히는 배움으로 포장된 스펙쌓기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배움은 지금의 대학 안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학교육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경험상 소위 말하는 ‘취업 양성소’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학과나 과목은 없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배움의 목적이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수들이 개강 첫 날 수업계획을 전달하면서 한숨 섞인 말투로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학점 이야기 나오니까 눈빛이 바뀌는구만.” 이 말은 얼마나 학점을 쉽게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수강과목을 선택하는데 있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점을 잘 받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대학에서 반드시 정치, 사회적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저런 천편일률적인 스펙에 목을 걸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어버렸을 때 누구 말마따나 대학은 하청업체가 된다. 지금 대학에서의 배움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되지 못했다. 우리 모가지를 옥죄는 족쇄도 역시 사회구조에 그 뿌리가 있다.

  학교가 기업의 하청업체라는 말을 단순한 수요-공급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조금 더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극단적으로 비틀어 말하면 학교는 기업을 위한 미래의 노동력을 제조하고 판매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업이 원하는 노동력을 갖도록 도와준다. 그 대가로 돈을 번다. 그 돈은 물론 학생들의 등록금이다. 이상하다. 기업이 학교의 ‘고객’이라면 돈은 기업이 지불해야 한다. 왜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가? 왜 학생들은 취직 후 노동자가 되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 번 돈으로 주머니의 빈자리를 채워 나가야 하는가? 기업을 위한 노동자 육성이 대학의 과제라면 등록금은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제활동이 국가경제를 위한 것이라면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등록금을 내는 건 대학생들이다. 현재 대학생들의 노동력과 자본이 미래 자신들의 노동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당혹스러운 비효율성이 아닐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학생이 대학을 거쳐 기업에 들어가는, 서로가 윈-윈-윈 인 관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대학과 기업 두 개체의 연결고리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최종 결과는 사회가 명명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학생들의 객체화다. 이 삼각관계 아래에서 학생들이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 빈 주머니를 메우기 전까지는 노동자는 노동력의 대가를 기대할 수 없다. 과거에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대학생들은 학생일 땐 돈을 지불해야 하고 취직을 하고 나선 노동력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 잃고 또 잃을 뿐이다. 착취하는 사람은 없는데 착취당하는 사람은 있다. 해괴한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놓여있는 현실의 정체다.

  김예슬의 퇴교선언은 이런 부조리를 향한 사자후다. 그녀는 지옥에서 온 빨갱이같은 게 아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대학생이었을 뿐이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나? 한번이라도 대학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 앞서 말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풍선이 불만과 불안으로 부풀대로 부풀었는데 안 터지는 게 이상한 거다. 그녀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처음으로 풍선에 구멍을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약 한 달 전, 며칠이나마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김연아를 떠올려보자. 공교롭게도 김연아와 김예슬은 둘 다 이명박의 후배이자 (역겨운 광고카피를 빌리자면) 고려대의 딸이다. 그리고 한 명은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여동생 혹은 피겨여신이고, 한 명은 이제 20대 중반 고졸 여성이다. 한 명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다른 한 명은 학교 벽에 대자보를 붙였다. 이명박과 고려대가 김예슬을 자랑스러워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그녀의 행동은 김연아의 피겨 연기보다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김예슬에겐 ‘고려대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닐 것이고 일각에선 ‘의식있는 시민’이라 불리며 허울뿐인 명예도 얻을 수 있을테다. 허나 의식있는 명문대 자퇴생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한들 우리가 이 대학이라는 주류의 틀로부터 이탈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는 불편하다. 김연아는 3일 동안의 행복을 주었지만 김예슬은 앞으로 남은 대학생활 내내 느끼게 될 불편함을 주었다. 그 불편함이 우리에게 김연아가 주었던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찢기고 오물로 더럽혀진 김예슬의 대자보 김연아의 금메달보다 더욱 빛난다. /끝





by 유민석 | 2010/03/18 21:58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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