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echanism

  컴퓨터가 책꽂이에 들어가더니 지하철에서 소녀시대의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보는 세상이 도래했다. 기계가 삶으로 파고든 흔적이 깊다. 7살이 된 아톰이 하늘을 날아다니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21세기라는 아우라에 걸맞은 세상에서, 여기 기계하고는 하나도 안 친한 남자가 살고 있다.

  iPhone이 태평양을 건너 상륙한지 꼬박 두 달이 지났다. 2년을 기다린 끝에 거머쥔 iPhone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블로그 메타 사이트는 iPhone에 관한 포스팅으로 포화상태를 이루었고 그 중 IT기기를 전문적으로 다뤘던 블로거들은 벅찬 감동을 장문의 글로 써내려갔다. 평소 간지 좀 난다는 청담동의 패션좌파 A씨는 iPhone의 터미널+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대하여, 이번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B씨는 iPhone에 비하면 옴니아2가 얼마나 저질(?)이며 옴니아2에 비하면 iPhone은 어쩜 이렇게 황홀한가에 대하여 키보드가 마르고 닳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

  iPhone 바람은 내 주변에서도 조금씩 불고 있었다. 작년 5월경 모토로라의 RAZR LUK으로 전화기를 바꾼 K와 나는 왜 한국에서 노키아가 망했는가, 삼성은 왜 값싸고 튼실한 바(Bar)형 제품은 생산하지 않는가, 도대체 전화기에 카메라는 왜 붙어있는가에 대해 별로 진지하지 않은 토론을 했다. 우리는 슬라이드와 폴더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과 터치폰에 열광하는 세태를 냉소하며 우리의 자존감을 확인했다. 그리고 백호년의 세 번째 해가 떠오르던 날, K는 새해기념으로 스스로에게 iPhone을 선물했다. 약정은 끝나지 않았다.

  구준엽이 iPhone과 블랙베리를 분해했다가 재조립에 성공했다는 기사에도 난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뭐 어쩌라고. 난 아무래도 기계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 제대 직후였다. 갓 운전면허를 따고 첫 운행에 나섰다가 의지와 무관하게 270° 드리프트를 시전하며 ‘아, 지옥은 이렇게 가는거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뒤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기계치는 아니다. 가전기기의 설치나 컴퓨터의 간단한 운용 정도는 어려움 없이 해내며 운전은 잘 못해도 스페어타이어 정도는 교체할 줄 안다. 말하자면 사는데 문제없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앞으로는 어떨까?

  스티브 잡스는 일찍이 iPod으로 음악시장을 뒤흔들었다. 단순한 MP3P가 아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미칠 듯이 촌스러운 연출이었지만 죽어도 목에 걸고 다녔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감각적인 인터페이스와 신선한 디자인은 애플이 홀대해 마지않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먹혀들었다. 사람들은 불평,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스티브 잡스의 노예가 되는 걸 개의치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AA배터리로 작동하는 iRiver의 T50이면 만족스러웠다. iPod으로 음악을 듣든, iRiver로 듣든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iPhone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에서 iPhone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인터넷 환경의 보다 확연한 변화이다. 휴대전화의 인터넷 사용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이통사에 이용료를 지불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iPhone은 전화를 하다가도 Wi-Fi를 이용하여 무선 인터넷을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본격적인 소형 단말기이다. 급한 메일을 확인하려 전전긍긍 PC방을 찾을 일도, 책 크기만큼 작아졌다지만 그래도 인터넷 잠깐 하기엔 부담스러운 넷북도 필요가 없다. 길을 걷다 용건이 있으면 까페 근처에 쭈그려 앉아 신호만 잡아주면 된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 수용에 있어서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 범위는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IT기기에는 관심이 없을 예정인 나와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일찍이 적응한 이와는 정보의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머지않아 모두가 소녀시대 3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 홀로 머쓱하게 듣고만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이동통신 분야에만 한정될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토매틱 패러다임을 뛰어 넘은 자동차가 등장할 지도 모르고 정말 아톰이 서울 하늘에 슝~하고 날아와서 나를 납치해 갈지도 모른다. 이 모습을 유지한다면 나는 자동차를 조작할 줄도 모를 것이고, 아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와중에도 ‘테즈카 오사무가 있는 지옥으로 데려가는 겁니까?’ 따위의 헛소리를 뱉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디지털스러운 고립이랄까, 소외랄까. 조금 무서워지려고 한다. / 끝



아이폰이 뭐임? 먹는 건가여 우걱우걱


(*PS. 제목과 같은 영어단어 따위는 없습니다. 어디가서 개쪽당하는 일 없으시길.)
by 유민석 | 2010/01/28 06:35 | 잡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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