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터를 말한다 1편(첨)
네비게이터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안내자'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생면부지 사람을 붙잡아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려는 이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천국으로의 안내자' 쯤 되겠다. 단, 대화에서 추측컨데 이들은 CCC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임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니까 애꾿은 CCC를 싸잡아 욕하지 말잔 소리다.


13번. 올 해 내가 만난 '안내자'들의 숫자다. 그러니까 거의 매달 만나는 셈이다.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이나 만났다. 이러다 정 들겠어.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할 때 이들을 만나게 되는 조건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첫 째, 혼자일 것. 둘 째, 앉아 있을 것. 셋 째, 한가할 것. 아무리 넉살 좋은 '안내자'들이더라도 일행이 있을 경우 다가서는 것은 쉽지 않다. 뭉치면 강해지는만큼 흩어지면 나약해지는 게 사람이니까(이승만이랑 상관 없음). 또한 일어서 있거나 걷는 사람에게 말 붙이는 것도 대상(?)이 재빨리 낌새를 눈치채고 도주(?)해버릴 여지가 크기 때문에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렴 염치가 있지 바빠서 정신없는 사람 붙잡고 기독교 운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성질 드러운 사람이라면 한 대 때릴 지도 모른다.


조건을 나름대로 되짚어보니 왜 내가 그들과 만나는 일이 잦은 것인지 납득이 갔다. 밥 먹을 때나 같은 강의를 들을 때가 아니라면 난 거의 혼자 있는 편이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벤치에 앉아있는 일이 많고, 담배를 태우거나 커피를 홀짝거리거나 문자를 보내는 일이 주 업무이니, 바로 내가 세 가지 조건에 더할 나위없이 부합되는고나. 역시 내가 그들을 만나게 되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얼굴에 魔가 끼어서가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지금 내가 하고자하는 소리는 "어떻게하면 '안내자'들을 피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단순히 그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면 위의 조건들만 피하면 된다. 이 글은 도저히 저 조건들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1. 그들이 온다.

이젠 척하면 척이다. 20m이내에서 생전 모르는 사람이 한 명 혹은 두 명이 짝을 지어 다가온다면 살짝 긴장해주자. 온 몸의 세포를 곤두세우고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자.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하여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목표인지를 파악하자. 내가 목표라면 재빨리 일어나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걷도록 하자. 좀 여유롭게 걷도록 하여 '내가 너희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볼 일이 있어 가는 것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자. 뛰어서 좇아오면 낭패.


2. 잡혔다.

달리기가 느리거나 미처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옆자리를 허용하였다면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한다. 성격이 화끈하다면 그냥 무시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세심한 성격을 가진 이라면 그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내 경우 바로 일어나기가 미안해서라기보단 일어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지만 뭐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3. 닥치거나 혹은 싸우거나

언제나 질문이다. 처음에만 몇 마디 대꾸해주고 조용히 있으면 대부분 혼자서 뭐라뭐라 하다가 가버린다. 허나 이렇게 대처할 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당치도 않는 소리에 스트레스성 변비, 탈모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침묵하든 논박하든 편한 것으로 선택하자. 대부분 처음엔 교회를 다니는 지 여부를 묻는다. 어떤 대답을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다음 패턴은 영생과 구원에 관한 질문이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엔 도저히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항상 부정했었다. 그러면 그들은 기독교를 믿는 목적(참고로 앞선 질문에서 교회를 다닌다고 밝힌 경우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 여기부턴 최근에 만났던 고수(?)와의 대화를 참조로 하자.



(전략)

네비게이터(이하 N) : 기독교를 믿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 : 종교를 믿는 목적은 현실의 삶에서 심신의 평안을 얻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N : 심신의 평안을 얻기 위함이다...? 자, 예를 들어 봅니다. 어머니께서 대학에 입학한 형제분을 위해 컴퓨터를 사 주셨습니다. 어머님은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의미에서 사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헌데 이 컴퓨터로 지뢰찾기 같은 게임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어머님께서 컴퓨터를 사주신 진정한 뜻을 거스르는 것이겠지요. 기독교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까닭은 단순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통해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나 : ...!!(고수구나) 그렇습니까?

N : 네. (성경을 펼치면서) 여기 이 구절을 보시죠. "내가 너희에게 … 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나 : 새 생명이라는 게 영생입니까?

N : 그렇죠.

나 :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새 생명'이라는 것이 현세의 삶 속에서 느껴온 많은 부조리와 불행을 극복하는, 어떤 새로운 깨달음이 아닐까합니다.

(중략)

N : 성경공부를 더욱 심도있게 하고 싶으신 생각은 없습니까?

나 : 네, 지금으로도 만족합니다. 비록 성경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할 순 없지만요.(기독교신자라 밝힌 후임)

N :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시죠? 하지만 그 중에서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잖습니까? 아까도 설명드렸듯이 기독교를 믿는 목적은 영생을 위함입니다. 헌데, 하나님께서 자신과 조금 더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구를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나 : (이겼다!) 호.. 하나님께선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십니까?

N : ...! 아, 물론 그렇진 않으시죠.

(후략)



올 해 뿐만이 아니라 그간 만났던 거의 모든 '안내자'들의 패턴이 비슷했다. 처음엔 나도 그냥 붙잡혀 설교를 듣거나 무시하고 도망가는 쪽이었다. 허나 어느 날, 맞서보자 결심했고 다수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자부했다. 헌데 이 사람은 달랐다. 이렇게 말빨이 좋은 사람은 처음 만나보았다. 보통은 '당신과 나는 가치관이 다르다'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면 머뭇거리다 사라지기 마련인데 설마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순간 당황해서 바로 받아치질 못한 것이 아쉬웠다.


비록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을지라도 일진일퇴를 거듭한 논쟁의 끝에서 웃은 자는 나였다. 뒤의 대화는 같은 말의 반복일 뿐이었다. 물론 일어나기 귀찮았던 나는 그들을 보내고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나처럼 어지간히 심심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귀찮은 사람이라면 저런 식의 대화를 연습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들의 패턴을 알고 차분하게 대응한다면 나름대로 재미도 있으니까 말이다.


PS. 웃자고 쓴 글입니다.

PS2. 네비게이터는 학교 동아리 중 하나였습니다.
by 벼룩 | 2006/12/10 01:18 | Life & Liv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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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김치 at 2006/12/10 10:25
멋지게 탈피하시는 군요. 전 잡히면 꼼짝없이 듣고있음..(..)
Commented by 벼룩 at 2006/12/10 23:08
한번 부딪혀보면 재밌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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